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올로프 팔메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종종 [[존 F. 케네디]]나 [[로버트 F. 케네디]]와 비교되곤 한다.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진보 정당에서 활동하며 젊은 나이에 총리에 취임해 평화주의적인 정책을 펼쳤고 비극적으로 암살되었다는 점까지 똑같기 때문이다. * 팔메는 국내정치뿐 아니라 국제외교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낸 정치인이다. 대표적으로 [[베트남 전쟁]]에서 미국의 군사 행위를 비난하였고 [[이란-이라크 전쟁]]을 중재하는 등 세계평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. 또한 소련의 동유럽 국가에 대한 내정간섭 문제나 스페인의 [[프란시스코 프랑코|프랑코]] 정권, 남아공의 [[아파르트헤이트]], 칠레의 [[피노체트]] 정권 등에 대해선 강하게 비판했다. * 덕분에 [[대한민국]]과도 인연이 있는데 [[김대중]]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 겸 민주화 운동가였던 시절 군부 출신 권위주의 정권인 [[박정희 정부]]와 [[전두환 정부]]로부터 목숨을 위협받을 때 [[빌리 브란트]] 서독 총리와 함께 여러차례 국제 여론을 움직여 DJ를 구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. * [[스웨덴어]]를 비롯해 어머니가 사용한 언어인 [[독일어]]와 [[영어]], [[프랑스어]], [[러시아어]]를 포함한 여러 언어에 능통했다. 또한 [[스페인어]]와 [[이탈리아어]]에도 조예가 깊었고, 다른 언어들에 대한 실무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. * 운동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재능 있는 스포츠맨이기도 했다. 특히 [[스키]]를 매우 잘 탔던 터라 여러 국제 대회에서 [[스웨덴]] 국가대표로 출전한 경험도 있다. 또한 열렬한 축구 팬이었고 스톡홀름의 지역 팀에서 뛰기도 했다. * 열렬한 여행자이기도 했는데, 방학을 할 때면 유럽과 미주 전역의 여러 나라에서 시간을 보냈다. 이러한 경험들은 그를 다른 문화와 삶의 방식에 노출시켰고 세상에 대한 그의 관점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었다. * 절친이었던 [[잉바르 칼손]]과 여러모로 비교되는 모습이 많다. 칼손은 어려서부터 가난한 환경에 학교가 끝나면 집 근처의 공장에서 8시간 이상 중노동을 했었던 반면, 팔메는 스톡홀름의 부유한 가문 출신이었다. 두 사람 모두 [[타게 엘란데르]]의 보좌관으로 발탁되어 정치에 입문했다. 공교롭게도 두사람 모두 총리 재임 시절 [[중앙당(스웨덴)|야]][[온건당|당]]에게 정권을 내주었다가 재집권한 적이 있다. * 팔메와 칼손 두 사람은 사회적 배경이 달랐는데도 정치를 지적이고 전술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을 공유했다. 칼손은 팔메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, 특히 [[1980년 스웨덴 원자력 발전소 국민투표]]에 관한 투표 직전 당내 논의에서 '특급 해결사'가 되어주었다. * 핵확산 방지 노력과 [[아프리카 민족회의]], [[PLO|팔레스타인 해방기구]], [[폴리사리오 전선]] 등의 독립운동은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. 이렇게 꽃피운 스웨덴의 중재외교가 현재까지도 스웨덴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. 이런 면에서는 [[오만]]의 [[카부스 빈 사이드]] 국왕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.[* 주로 스웨덴은 [[북한]]과 관련된 중재를, 오만은 [[이란]]과 관련된 중재를 한다는게 특징.] * 배우 [[셜리 맥클레인]]에 따르면 한때 내연 관계였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